용인에서 고기 먹을 땐, 얇게 말고 두툼하게
두툼하게 썬 생고기
용인에서 고기를 좀 먹어봤다는 사람들끼리는 통하는 말이 하나 있습니다. 여기선 고기를 얇게 썰지 않는다는 것. 마트 진열대에 가지런히 누운 대패삼겹살, 불판에 올리자마자 순식간에 익어 사라지는 그 얇은 고기 말고요. 손가락 두 마디쯤 되는 두께로 큼직하게 썬 생고기를 불에 올려 겉만 노릇하게 지지고, 안쪽은 촉촉하게 익혀 큼직하게 썰어 먹는 방식. 용인 사람들이 '근고기'라고 부르는 그 고기 이야기를, 용인 도심을 오백 년 지켜온 용이가 오늘 제대로 풀어보려고 합니다.
근고기가 대체 뭐길래
근고기라는 이름부터 짚고 갈게요. '근'은 무게 단위입니다. 한 근은 육류 기준으로 보통 육백 그램. 그러니까 근고기는 그램 단위로 잘게 파는 게 아니라, 근 단위로 큼직하게 주문해 먹는 생고기를 말합니다. 얼리지 않은 생돼지고기를 두툼하게 썰어 내오는 게 핵심이에요. 원래는 제주도에서 온 문화라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제주 흑돼지를 두껍게 썰어 연탄불에 구워 먹던 방식이 육지로 올라오면서, 요즘은 '제주 근고기'라는 간판을 단 집들이 전국에서 눈에 띄죠. 용인 도심에도 이 근고기집이 꽤 자리를 잡았습니다. 보정동 카페거리 근처, 수지구청역 먹자골목 같은 곳을 걷다 보면 '제주 근고기'를 내세운 고깃집 간판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어요.
용인이라는 도시 자체가 근고기와 잘 맞는 구석이 있습니다. 신도시가 들어서면서 젊은 가족이 대거 유입됐고, 회사와 연구단지가 많아 회식 수요도 탄탄하죠. 얇은 고기 몇 점으로 끝나는 자리가 아니라, 네다섯 명이 둘러앉아 근 단위로 푸짐하게 시켜 나눠 먹는 자리. 두툼한 고기 한 덩이를 가위로 큼직하게 잘라 각자 앞접시에 놓고, 된장찌개 한 숟갈 곁들이며 오래 앉아 있는 그림. 이게 용인과 경기 남부의 고기 문화에 자연스럽게 스며든 이유입니다. 빠르게 태워 먹는 고기가 아니라, 천천히 익혀 오래 먹는 고기니까요.
얇은 고기는 맛을 보여주고, 두꺼운 고기는 맛을 견디게 한다.
— 🐉 용이두께가 만드는 육즙의 과학
그렇다면 왜 굳이 두껍게 썰까요. 답은 육즙에 있습니다. 고기를 얇게 썰면 표면적이 넓어지는 만큼 불에 닿는 순간 수분이 빠르게 날아갑니다. 몇 초만 지나도 겉이 바싹 익고 속까지 금세 마르죠. 반대로 두툼하게 썬 고기는 겉면이 먼저 노릇하게 익으면서 안쪽 육즙을 가둡니다. 겉은 불향이 배어 고소하고, 속은 아직 촉촉하게 남아 있는 상태. 그 대비가 근고기의 진짜 매력이에요. 한 입 베어 물면 겉의 바삭함과 속의 부드러움, 그리고 씹을 때 배어 나오는 육즙이 한꺼번에 밀려옵니다. 얇은 고기에서는 절대 나올 수 없는 식감이죠.
대신 굽는 데는 요령이 필요합니다. 두꺼운 만큼 시간이 걸리고, 성급하게 자주 뒤집으면 육즙이 빠져나가요. 그래서 근고기집에서는 대개 직원분이 자리에 와서 직접 구워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큼직한 고기를 불판에 올려 한 면을 충분히 익힌 뒤 뒤집고, 노릇해지면 가위로 먹기 좋게 잘라주는 식이죠. 손님은 그저 기다렸다가 가장 맛있게 익은 타이밍에 집어 먹으면 됩니다. 이 '구워주는 서비스'가 근고기집을 편하게 만드는 또 하나의 이유예요. 불 조절 신경 쓰느라 대화가 끊기는 일이 없으니까요. 연탄불로 굽는 집이라면 특유의 불향이 한 겹 더 얹혀서, 겉면의 고소함이 배가됩니다.
고기만큼 중요한 곁들이 한 상
근고기 자리는 고기 하나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두툼한 생고기의 진한 맛을 받쳐주는 곁들이가 있어야 비로소 한 상이 됩니다. 가장 기본은 뚝배기에 보글보글 끓여 나오는 된장찌개. 기름진 고기를 몇 점 먹고 나면 구수하고 짭짤한 된장국물 한 숟갈이 그렇게 당깁니다. 여기에 갓 지은 밥 한 공기를 더하면, 고깃집이 아니라 잘 차린 한식 밥상 같은 기분이 들어요. 아삭하게 익은 김치, 파채무침, 쌈채소와 쌈장까지. 두툼한 고기를 상추에 올리고 마늘 한 조각, 쌈장 살짝 찍어 크게 싸 먹으면 그 자체로 한 끼가 완성됩니다.
곁들이 메뉴로 계란찜을 시키는 것도 용인 근고기집의 흔한 풍경입니다. 뚝배기에 폭신하게 부풀어 오른 계란찜은 아이들이 특히 좋아해서, 가족 단위 손님이 많은 용인에서는 거의 빠지지 않는 메뉴예요. 고기가 익기를 기다리는 동안 계란찜을 떠먹고, 된장찌개에 밥을 말고, 김치를 곁들이는 그 여유. 근고기 자리가 유독 오래 이어지는 건 이 곁들이들 덕분입니다. 고기 한 덩이를 다 먹고 나서도 밥과 찌개로 마무리까지 든든하게 챙길 수 있으니, 회식이든 가족 외식이든 모두를 만족시키기 좋죠.
어떤 자리에 잘 어울릴까
근고기는 혼자 오는 고기가 아닙니다. 근 단위로 큼직하게 파는 만큼, 여럿이 둘러앉아 나눠 먹을 때 진가가 나옵니다. 그래서 가족 외식이나 회식 자리에 특히 잘 맞아요. 아이가 있는 가족이라면 두툼한 고기를 잘게 잘라주기 좋고, 계란찜과 된장찌개로 아이 입맛까지 챙길 수 있죠. 회식이라면 근 수를 넉넉히 시켜 불판 가득 올려놓고, 직원분이 구워주는 사이 편하게 대화를 이어가면 됩니다. 얇은 고기처럼 정신없이 뒤집을 필요가 없으니, 술잔 부딪히며 이야기하는 자리에 딱이에요. 용인 도심의 먹자골목이나 카페거리 근처 근고기집이라면, 식사 후 근처에서 커피 한잔이나 산책으로 마무리하기도 좋습니다.
처음 가는 분이라면 욕심부터 내려놓는 걸 권합니다. 근고기는 양이 넉넉하니, 인원수에 맞춰 근 수를 잡되 부족하면 추가하는 편이 낫습니다. 한꺼번에 많이 시켜 불판에서 식혀가며 먹는 것보다, 한 근씩 갓 구운 걸 뜨겁게 먹는 게 두께의 매력을 제대로 살리는 법이에요. 두툼한 고기는 식으면 기름이 굳어 맛이 확 떨어지거든요. 겉이 노릇하게 익고 가위질 한 번에 육즙이 살짝 비칠 때, 그 타이밍에 바로 입에 넣는 것. 그게 용인 근고기를 가장 맛있게 먹는 순간입니다.
용이의 팁 · 근고기는 두꺼워서 굽는 데 시간이 걸립니다. 배가 몹시 고픈 상태로 가기보다, 자리에 앉아 된장찌개와 계란찜부터 시켜 먼저 요기해두면 고기가 익을 때까지 여유롭게 기다릴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