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교산 초보 코스 끝나면, 진짜는 그다음입니다
밥은 묵직하게
용인 사람들에게 광교산은 대단한 도전이라기보다 동네 뒷동산에 가깝습니다. 주말 아침 가볍게 몸 풀고 내려와서 점심 한 끼 챙겨 먹기 딱 좋은 코스가 여러 개 있는데, 처음 오르는 분들껜 동천우체국에서 출발하는 길을 가장 많이 추천합니다. 산책로 같은 길이라 부담이 적고, 내려오는 길에는 배를 든든하게 채울 수 있는 골목이 기다리고 있거든요. 등산화도, 거창한 각오도 크게 필요 없는 코스인데, 오늘은 그 초입 먹자골목까지 순서대로 함께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초보라면 동천우체국에서 시작하세요
광교산으로 오르는 길은 방향에 따라 여러 갈래입니다. 수지 쪽 체육공원에서 시작하는 코스도 있고, 고기동 방향에서 붙는 코스도 있는데, 광교산을 처음 만나는 분이라면 동천우체국 출발 코스가 제일 무난합니다. 초입부터 미륵사까지 이어지는 구간은 경사가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전반적으로는 산책로에 가까운 완만한 길이라 등산화 없이 운동화만 신고 와도 크게 무리가 없습니다. 왕복으로 잡아도 1시간 반 정도면 충분해서, 정상까지 욕심내지 않고 능선 한 자락만 맛보고 내려오는 코스로 딱입니다. 반나절을 통째로 비우지 않아도 되니까, 평일 오전에 잠깐 다녀오는 직장인들도 많고, 아이 손잡고 나선 가족 단위 산책객도 자주 보입니다. 도심에서 차로 잠깐이면 초입에 닿는다는 것도 이 코스가 꾸준히 사랑받는 이유 중 하나고, 처음 광교산을 만나는 분들껜 실패 없는 선택이라고 자신 있게 말씀드립니다.
내려오는 길, 배꼽시계가 먼저 웁니다
산이 크지 않다고 얕보면 안 됩니다. 완만한 길이어도 오르내리는 동안 몸은 정직하게 에너지를 씁니다. 미륵사 근처에서 몸을 돌려 하산길에 접어들 즈음이면 다들 약속이나 한 듯 걸음이 빨라지는데, 이유는 하나예요. 배가 고파지기 시작하거든요. 다행히 동천우체국 쪽 초입은 등산객을 상대로 오래 자리를 지켜온 식당들이 자연스럽게 골목을 이루고 있는 동네입니다. 등산 인구가 꾸준한 동네다 보니, 밥집들도 그 리듬에 맞춰 자리를 잡았고, 주말이면 등산복 차림 그대로 상 앞에 앉은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이 동네 밥상에서 자주 보이는 재료가 도토리입니다. 도토리묵이나 도토리국수처럼, 산에서 나는 재료를 눌러 만든 음식이 메뉴판에 꾸준히 올라와요. 뜨끈한 국물보다는 시원하고 슴슴한 맛이 많아서, 땀 흘리고 내려온 몸에 부담 없이 들어갑니다. 여기에 두부며 파전 같은 곁들이 메뉴가 자연스럽게 상에 딸려 나오는 것도 이 골목 특유의 분위기고요. 화려하게 꾸민 상은 아니지만, 그래서 오히려 등산 뒤 헛헛한 속을 편하게 채우기 좋고, 반찬 그릇 몇 개만 둘러봐도 이 동네가 오래도록 등산객을 받아온 내공이 느껴집니다.
동천 골목의 밥상, 이렇게 갖춰져 있습니다
메뉴 폭도 제법 넓습니다. 화덕에 구운 고등어구이처럼 불맛을 낸 생선 메뉴를 내는 집도 있고, 상다리 휘어지게 반찬을 올리는 한정식·백반집도 있어요. 등산 후 여럿이 모였을 때는 이런 한상차림이 특히 인기입니다. 혼자거나 둘이서 가볍게 먹고 싶다면 도토리국수나 막국수처럼 후루룩 넘기는 면 메뉴도 충분히 만족스럽고요. 등산객 수요가 꾸준한 동네답게, 어느 집이든 인심이 박하지 않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조금 더 발품을 팔 여유가 있다면 광교산 반대편, 고기동 방향으로 넘어가는 것도 방법입니다. 그쪽 초입의 막국수집은 전국구로 이름나서 주말이면 오픈런에 웨이팅까지 붙을 정도인데, 그만큼 '등산 후 막국수'라는 조합이 이 동네에서는 하나의 공식처럼 자리 잡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동천 쪽은 상대적으로 여유롭게 앉을 수 있으니, 줄 서는 게 부담스러운 날엔 동천 골목을 먼저 찾는 게 낫습니다. 같은 광교산을 사이에 두고 양쪽 자락에 등산 후 밥집 문화가 나란히 자리 잡은 셈이니, 어느 쪽으로 가든 헛걸음은 아니고, 오히려 취향에 따라 골라 가는 재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언제 가면 좋냐면
여름철엔 해 뜨자마자 출발하는 걸 추천합니다. 산책로 같은 길이라도 한낮 땡볕 아래 오르내리면 체력 소모가 확 다릅니다. 오전 일찍 다녀오면 하산 시간이 자연스럽게 점심 즈음과 맞아떨어져서, 골목 식당들이 가장 활기를 띠는 시간대에 도착하게 됩니다. 반대로 늦은 오후에 내려오면 브레이크타임에 걸리는 집도 있으니, 이왕이면 점심 타이밍에 맞춰 움직이는 걸 권합니다. 정상 정복은 사진으로 남고, 하산길 밥집은 기억으로 남는다는 말이 있죠. 무리해서 정상까지 찍는 날보다, 이렇게 가볍게 다녀와서 배부르게 마무리하는 날이 오래 기억에 남더라고요. 다음엔 광교산 반대편 골목까지 욕심내 볼 만합니다.
용이의 팁 · 동천우체국 인근 골목은 길이 좁아 주말 낮에는 차가 몰립니다. 가능하면 대중교통이나 도보로 접근하는 편이 마음 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