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주와 조광조, 용인이 품은 두 시대
용인을 걷다 보면 가끔 시간이 겹쳐 보일 때가 있어요. 처인구 모현읍 능원리, 논밭과 낮은 산이 이어지는 조용한 동네 한쪽에는 고려 말의 마지막 충신이라 불리는 사람이 잠들어 있고요, 수지구 상현동 아파트 단지 사이 나무가 우거진 자리에는 조선 중종 때 개혁을 꿈꾸다 세상을 떠난 학자가 잠들어 있어요. 두 사람이 살았던 시대도, 각자 지키려 했던 것도 서로 완전히 달랐지만 지금은 같은 도시, 용인 안에 나란히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오늘은 그 두 자리, 정몽주 묘와 조광조 묘 이야기를 천천히 풀어볼게요.
포은 정몽주, 모현읍에 잠들다
처인구 모현읍 능원리에는 포은 정몽주의 묘가 있어요. 정몽주는 고려 말을 대표하는 학자이자 충신으로 오래도록 이름이 전해 내려오는 인물이죠. 그의 묘 바로 곁에는 뜻을 기리기 위해 세운 충렬서원이 자리하고 있는데, 오늘날까지도 이 묘역과 서원은 경기도가 지정한 문화재로 관리되고 있어요. 능원리는 지금도 논과 밭, 낮은 구릉이 이어지는 조용한 동네인데, 그 풍경 사이로 이렇게 오래된 이야기가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게 저는 처음 알았을 때 꽤 신기했어요. 화려하게 드러나 있지 않아서 더 마음이 가는 자리랄까요.
충렬서원이라는 이름에는 충성스럽고 열렬하다는 뜻이 담겨 있다고 해요. 후손과 지역 사람들이 정몽주가 지키려 했던 마음을 오래도록 잊지 않고 싶어서 이 자리를 세우고 지켜온 거겠죠.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는 건 단순히 오래된 무덤 하나가 남아 있다는 뜻이 아니라, 용인이라는 도시가 함께 책임지고 기억해야 할 역사라는 뜻이기도 해요. 능원리를 지나칠 일이 있다면 한 번쯤 이 서원 앞에 잠깐 멈춰 서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그런데 용인에 잠든 이야기는 정몽주 하나만이 아니에요. 시간을 조금 더 흘려보내면, 이번엔 도시의 반대편, 수지구 쪽에서 또 다른 이름을 만나게 됩니다. 고려가 저물고 조선이 자리를 잡은 지 한참 뒤, 이번엔 정암 조광조라는 이름이 등장해요.
정암 조광조, 상현동에 남다
수지구 상현동에는 조광조의 묘와, 그를 기리는 심곡서원이 자리하고 있어요. 조광조는 조선 중종 때 개혁을 이끌던 학자였는데, 그 개혁이 너무 급진적이었던 탓인지 기묘사화라는 사건에 휘말려 사사되었다고 전해져요. 자신이 옳다고 믿은 길을 끝까지 걸으려다 결국 그 길 위에서 생을 마감한 셈이죠. 그의 묘와 심곡서원 역시 정몽주의 자리와 마찬가지로 경기도 문화재로 지정되어 오늘날까지 보존되고 있고요, 아파트가 빼곡히 들어선 상현동 한복판에 이런 자리가 남아 있다는 게 볼 때마다 새삼스러워요.
정몽주는 지키려 했고, 조광조는 바꾸려 했다. 방향은 달랐지만 두 사람 다 자기 자리에서 끝까지 걸었다.
— 🐉 용이지키려는 마음과 바꾸려는 마음. 어떻게 보면 정반대의 선택처럼 보이지만, 두 분 다 자기가 믿는 걸 끝까지 놓지 않았다는 점에서는 서로 닮아 있는 것 같기도 해요. 정몽주는 저물어가는 나라 앞에서 신의를 지키려 했고, 조광조는 이미 세워진 나라 안에서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꾸려 했으니까요. 방향은 달랐지만 둘 다 자기 자리에서 물러서지 않았던 사람들이었던 셈이죠.
그리고 그 두 마음이 지금은 같은 도시, 용인 안에 나란히 남아 있다는 게 저는 참 특별하게 느껴져요. 처인구와 수지구, 도시의 이쪽 끝과 저쪽 끝에서 각자의 시대를 살다 간 두 사람이 결국 한 지역의 이야기로 이어진 거니까요. 평소에 무심히 지나치던 동네 이름 뒤에 이런 시간들이 쌓여 있다고 생각하면, 용인이라는 도시가 조금 다르게 보이기도 해요.
용이의 팁 · 충렬서원은 처인구 모현읍, 심곡서원은 수지구 상현동에 있어서 서로 꽤 거리가 있어요. 하루 코스로 두 곳을 다 둘러보고 싶다면 이동 시간을 넉넉히 잡고 계획하는 게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