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교산, 사실은 조선 최악의 전쟁터였다
용인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올라봤을 광교산. 주말 아침 등산화 끈 단단히 조이고, 정상 표지석 앞에서 인증샷 한 장 남기고, 내려와서는 파전에 막걸리 한 잔 걸치고. 다들 이 코스, 눈 감고도 그릴 수 있을 만큼 익숙하시죠? 그런데 그 익숙한 능선 밑에 434년 전 조선이 겪은 가장 뼈아픈 패전의 기억이 그대로 잠들어 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오늘 용이가 등산로 아래 조용히 묻혀 있던 진짜 역사 이야기를 꺼내볼게요. 다 읽고 나면 앞으로 광교산 오를 때마다 발걸음이 조금은 다르게 느껴지실 거예요.
그 능선, 알고 보니 전쟁터였다
때는 1592년, 임진왜란이 터진 바로 그 해예요. 왜군이 파죽지세로 북상해서 한성, 지금의 서울까지 순식간에 내주고 나자 전국 각지에서 나라를 되찾으려는 움직임이 들불처럼 일어났어요. 그중에서도 가장 규모가 컸던 건 전라도, 충청도, 경상도 세 지역에서 모인 근왕군, 그러니까 삼도근왕군이었죠. 이광 등이 지휘한 이 군대는 수만 명 규모였다고 전해져요. 잠깐 상상해볼까요. 지금 우리가 등산 스틱 짚고 천천히 오르는 그 산길로, 수만 명의 병사들이 한성을 되찾겠다는 일념 하나로 북상하고 있었던 거예요. 그 발걸음 소리, 그 긴장감이 이 산자락 어딘가에 스며 있었다고 생각하면 묘한 기분이 들어요.
그런데 이 대규모 조선군을 가로막은 건 왜장 와키자카 야스하루가 이끄는 훨씬 작은 규모의 병력이었어요. 병력만 놓고 보면 상대가 안 될 것 같은 싸움이었죠.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였어요. 삼도근왕군은 이 전투에서 크게 패하고 말았습니다. 선조실록을 비롯한 여러 기록에 남아 있는 이 전투가 바로 '용인 전투'예요. 임진왜란 초반 조선군이 겪은 최대 규모의 패전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다름 아닌 우리 동네에서 벌어진 그 전투 말이에요.
수만 대군이 무너진 이유
숫자만 놓고 보면 도무지 이해가 안 가는 결과죠. 수만 명이 훨씬 적은 병력에게 무너지다니. 하지만 전쟁이라는 게 늘 머릿수 싸움만은 아니었나 봐요. 각지에서 급하게 모여든 근왕군들 사이에 손발이 완전히 맞지 않는 지휘 체계, 먼 길을 걸어오느라 이미 지칠 대로 지친 병사들, 그리고 그 틈을 정확히 파고든 상대의 기습 전술까지 겹치면서 그 큰 병력이 순식간에 흔들리고 무너져 내렸다고 전해져요. 전투가 정확히 어떤 순서로, 어떤 지점에서 벌어졌는지는 사료마다 조금씩 다르게 남아 있어서 딱 잘라 말하기는 어렵지만, 결과만큼은 분명해요. 조선으로서는 두고두고 뼈아픈 패배였다는 것. 그리고 그 패배가 벌어진 무대가, 바로 지금 우리가 주말마다 오르는 이 산이라는 것.
제일 큰 군대가 항상 이기는 건 아니더라고요. 그날 광교산 자락도 그랬대요.
— 🐉 용이이 패전은 그냥 '한 번 졌다'로 끝나는 이야기가 아니에요. 한성을 되찾으려던 계획 자체가 이 전투 하나로 크게 흔들리면서, 임진왜란 초반 조선의 전세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고 알려져 있어요. 그만큼 용인 전투는 규모로도, 그 이후 파장으로도 우리가 꼭 한 번쯤 기억해둘 만한 사건인 거죠. 그런데 정작 우리는 이 전투가 벌어진 자리를 그냥 익숙한 '등산 코스' 정도로만 알고 무심히 지나쳐온 건 아닐까요. 매주 오르내리면서도 그 아래 이런 역사가 깔려 있는 줄은 모른 채로 말이에요. 교과서 몇 줄로만 스치듯 배우고 지나갔던 그 전투가, 사실은 내가 사는 동네, 내가 매번 오르는 그 산에서 벌어졌다는 걸 알고 나면 역사가 훨씬 가깝게 느껴지지 않나요.
지금 그 자리엔, 등산로가 있어요
용인 전투의 격전지는 대체로 지금의 광교산 일대로 알려져 있어요. 다만 정확히 어느 능선, 어느 골짜기였는지는 사료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어서 콕 집어 '바로 여기다'라고 단정하기는 어려워요. 그래도 확실한 건 하나 있어요. 우리가 주말마다 숨 몰아쉬며 오르는 그 산이, 434년 전에는 수만 명이 나라의 운명을 걸고 맞붙었던 자리였다는 것. 흙을 밟는 감각도, 능선을 오르며 바라보는 풍경도 그대로인데, 그 위에 쌓인 시간의 무게만 다르게 느껴지는 거죠. 다음에 광교산에 오르실 때는 눈앞의 능선 하나하나가 아마 조금은 다르게 보이지 않을까 싶어요.
용이의 팁 · 광교산은 수원과 용인 경계에 걸쳐 있어서 등산로 입구가 여러 곳이에요. 용인 쪽에서 오르신다면 성복동, 수지 방면 들머리가 많이 이용되니 참고해주시고, 역사 이야기를 떠올리며 걷고 싶으시다면 정상 표지석 주변 안내판도 한 번쯤 눈여겨봐 주세요.